새해 첫날부터 부장이 불렀다.
새해인 만큼 사무실 자리를 옮겨보자고 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부장을 바라보고 있자
부장이 산뜻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들이 그동안 편한 자리에서 근무했으니 이제 여자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주는 게 어때?"
우리 사무실은 부장 1명 팀장2명, 팀원 11명이 근무중이다.
안쪽부터 팀장이 앉고 입사 순서, 즉 경력대로 앉아 왔다.
그러니 문 입구쪽에는 '여자'만 앉은 게 아니라
'신입사원'들이 앉았던 것이고
편한 자리란 운이 좋아 얻어 걸린게 아닌
연차에 의해 지정된 자리였던 것이다.
심지어 나보다 연차가 높아 나보다 더 안 쪽에 앉아있는 여직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혜택을 봐왔다는 듯 얘기하는 게
꼴보기 싫었다.
나를, 남자들을 그동안 특혜를 누려온 것 같은 발언에 심히 화가 났다.
더군다나 여자에게 배려 해라, 여자에게 양보해라 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차라리 입구쪽 신입사원들을 안쪽으로 다 옮겨서 앉게 하자고 했으면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OO신입사원이 자리를 불편해하니
바꿔줄 수 있느냐 물었으면 사정에 따라 바꿔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저 남자인 너가 여자인 직원들에게
배려하고 양보하라는 말이
참으로 구시대적이고, 그간의 회사에서 유지해 온
규율에서도 벗어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게 신입사원을 위한다고 했으면
자리 형태를 그대로 180도 바꿔서
팀장이 입구쪽에 앉고 신입사원이 가장 안쪽에
앉아야 하지 않을까?
여자 부장 본인도 경력으로 인해
거기까지 올라가 개인 공간까지 얻었고,
팀장들 역시 수년간 노력해 얻은 결실로
맨 안쪽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다.
부장 말 대로라면 그들 역시 특혜를 누린 것이다.
그런데 임원들은 쏙 빠지고
팀원들은 남녀라는 성별을 잣대로
본인 마음대로 자리 배치를 했다.
팀원들 사이에서도 많게는 5~6년씩 경력 차이가 나고
나이도 15년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오히려 나와 팀장들 나이 차이는 겨우 3, 4살 차이밖에 안 난다.
남녀성별로 갈라치기 할 거였으면
팀장 중 남자 팀장이 젤 문 입구에
자리를 배치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부장, 팀장, 직원들이 앉아 온 자리는
연차에 의해, 경력에 의해, 역할에 의해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를 억압하면서,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으면서,
욕심에 가득차 선택한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부하인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요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만 착한 사람이 되면 된다는 못된 PC주의다.
'나는 여자 직원들을 위해서 하는거야.'
'나는 약자들을 위하는 거야'
이렇게 본인은 올바르다고 생각하면서
평등을 위한 룰렛을 돌리자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룰렛에 포함되지 않는다.
나를 옆 팀으로 발령낼때도
성별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망언을 했었다.
개인의 양보 차원을 넘어
회사에서 공공연하게 성별을 잣대로
배려를 강요하고 양보를 요구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선택이든 모두가 동의하면 좋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킬 때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식이어야지,
내로남불 자신은 상관없으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 따위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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