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주황색 나방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눈으로 쫓으니 이윽고 나방은 나무에 걸터 앉았다.
마침 조깅을 나온 손자와 할아버지도 예쁜 주황색 나방을 발견하고 나방이 앉은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이내 할아버지는 흰색 운동화로 주황색 나방을 짓이겨 버렸다.
나무에 진한 얼룩만 남긴 채 주황색 나방은 그렇게 사라졌다.
놀란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죽였어?"
"중국나방이야. 중국거는 다 나쁜 거야. 다 잡아죽여야 돼."
말 없이 끄덕이는 손자의 눈을 보자니 훗날 조선족이나 중국 교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살인마가 떠오른 건 내 과장된 상상력 탓일까?
검색 결과, 그 나방은 “주황날개꽃매미”라는 예쁜 이름이 있다.
그리고 1930년대에도 이미 국내에 서식하고 있던 곤충이다.
해충으로 분류되버린 이 곤충은 사실 예전부터 과수즙을 빨아먹고 살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후 변화로 개체수가 폭증하며 문제가 커져버린 것이다.
중국 나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 당한 주황날개꽃매미.
그 할아버지는 정말 꽃매미가 싫었던 걸까?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진 편견 때문은 아니었을까?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다문화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글을 자주 발견한다.
동남아시아인 전체를 싸잡아 욕하는 그런 글들을 볼때면 안타까울 뿐이다.
같은 외국인인데 미국인이나 영국인, 원어민 강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라고 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방송에서 편견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이 실험에서 동남아시아인과 서양인이 각각 길을 물었다.
똑같은 영어를 썼어도 서양인에게는 온갖 제스춰를 다 쓰며 길을 알려주었고,
동남아시아인의 물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한국인의 부끄러운 모습이 기억난다.
같은 아시아인이면서 아시아인은 더럽고 가난하고 비열하며
반대로 유럽인은 착하고 깔끔하고 멋지다고 만들어진 편견은 아닐까?
온라인에 외국인 비하글을 올리는 사람은 외국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거나,
외국인 친구를 가까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TV나 뉴스에서 듣게 된 정보로 만들어진 편견은 아닐까.
헐리우드의 멋진 배우들과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일상생활이 만들어낸 당신의 편견.
요즘 뉴스에서 국제결혼을 한 베트남 여자들이 한국남편에게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거나 때로 한국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하지만 실상 한국남자가 베트남여자를 버리고 때리는 일이 더욱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한다.
베트남에는 한국남자가 전쟁이나 여행을 와서 버리고 간 아이들을 라이따이한, 코피노 라고 부른다.
이들 수는 2만명이 훨씬 넘는다.
한국남자들이여. 유럽에 가서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공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인, 조선족,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외국인을 고용하고 일 못한다고 욕하고 때리는 사장들은
과연 일 잘하는 한국인이 없어서 못 쓰는 것일까?
결국 싼 임금 때문에, 또는 노동력 부족으로 그들을 고용해 놓고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중국인이나 조선족, 파키스탄 인 등 동남아시아인이 한국에 일거리가 없다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
일을 찾아 나서는 게 잘못인가?
1970년대 한국은 중동,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가는 게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갖고 떠난 우리의 삼촌들은 몇 년 후 라이방을 끼고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 뿐인가? 박정희 대통령 때도 가난했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이민도 가고,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나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일궈졌고
지금 우리는 나름의 강대국으로서 부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가 외국인 근로자를 괴롭힌다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때가 다르다는 속담이 떠오르지 않는가?
필요에 의해 얻고, 필요에 따라 버리는 인간의 이기주의.
글을 써놓고 보니 나는 외국인이 한국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K-POP의 단꿈에 빠져 우리가 과거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자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토록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혐오하는 일본과 무엇이 다를까?
과연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한국에 온 것일까?
한국에 일손이 부족해 요청한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 산업에 그들이 없었다면 돌아갈 수 있을까?
곤충을 짓밟아버리고, 외국인을 학대하고, 배척하고,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것보다
그 원인과 대안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우리 넓은 마음으로 이해와 관용을 가져보면 안될까. 우리는 개인적 동물이 아닌 사회적 동물이니까.
커피를 마시며, 혼자 분개해서, 인간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싶어서...
오늘도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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