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에서 우리는 같은 내용과 장면을 2번 마주한다.
얼핏 보면 판박이처럼 똑같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두 번의 똑같은 진행 과정과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달라지는 말투와 표정 행동, 그로인해 상대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틀린그림찾기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던 장면과 대사들을 찾아보는 게 이 영화의 묘미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간밤에 A와 B가 술을 마시던 도중 크게 싸웠다는데 결국 해장국까지 먹고 아침에 인사하며 헤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싸우다가 그들이 화해해서 해장국까지 먹었는지는 정작 본인들도 알지 못한다. C라는 사람이 두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도무지 둘 사이에 화해의 시작을 찾기 어렵다. 대개는 이런 식으로 결론 낼 것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 풀렸어...”
기억이란 것은 참으로 믿을 것이 못 된다. 영화에서처럼 과장 또는 확대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편집되고, 첨삭된다. 기억이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말투, 표정, 감정과 태도들로 유추해야 하지만 결국 기억이란 것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그것이 기억의 당연한 모습이며, 정확한 사실로 남겨진다면 더 이상 기억이라는 단어 대신 기록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야 한다.
한 유부남 감독이 업무차 들른 수원행 하룻밤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세세한 감정과 말투, 표현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기억에서 확실한 것은 그들은 행궁에서 만났고, 커피를 마셨으며, 화방에 갔고, 회에 소주를 마셨으며, 친한 언니네 가서 진탕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 팩트는 변함이 없다. 기억의 소소한 편린이 빠지고 나면 이렇게 큰 줄기의 진실만 남는다. 그러니 극 중 인물이 말하는 화려한 언어적 수사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일까? 옷을 벗었던, 안 벗었던,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던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변화나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 한다. 지난날의 소소함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작고 소소한 감정과 관계들로 인생의 전부를 허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남들에게 우리를 감춰야 하고, 또 잘 보여야 하고, 때로 나 자신을 속이기도 해야 한다. 모래처럼 모든 유치하고 우습고 초라한 기억들을 모조리 가지고 살아간다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익사할지 모른다.
지금은 맞고 그때가 틀린 이유는 그때가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그때를 맞춰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든 조각이 아니라
현재의 나에게 필요한 구성 요소로 소모된다.
홍상수는 기억의 조작과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곧잘 사용하고는 했다.
찌질하고, 초라해 보이고, 한심하기까지한 캐릭터들을 통해 사랑이라는 통속성에 담아낸 소재지만 주제의식만큼은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본질의 내면과 습성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훌륭한 배우들을 마치 노메이크업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 것처럼 홍상수 감독은 날 것의 느낌의 영화를 고집하는데,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은 관객들에게는 정말이지 한없이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일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 또는 우리 주위의 누군가를 몹시도 닮은 캐릭터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거치고 나면 배우로서 거듭나기 마련이다. 배우병 빼는데는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 따라올 감독이 없다.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이번에 2017년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농익은 연기를 보고 있자니 모델 출신이라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김민희와 홍상수는 사생활로도 지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모든 결과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앞으로 두 분 모두 소망하는 것에 용기를 냈다면 감내하는 것에도 용기를 잃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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