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진부한 설정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애석하게도 이 영화가 딱 거기 부합한다.
영화 속 내용이 모두 어디선가 한번쯤 봤던 내용들로 가득하다.
과연 이 영화는 클리셰를 남발하였나, 아니면 장르적 네러티브를 적극 활용하였나?
여기서 잠깐 용어 해설.
클리셰는 반복되는 특성을 지칭하는 말로 다소 부정적인 표현이다.
장르적 플롯과 규범은 그 영화 장르가 가진 공통된 구성과 양식을 말한다.
이 영화는 복수극 액션영화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1.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지사.
2. 그 문제에 연루된 아내.
3. 비밀을 은폐하지 않은 아내의 죽음.
4. 경찰에 호소하는 남편(주인공)과 덮으려는 경찰들.
5. 복수를 준비하는 남편. 알고 보니 전직 특공대 출신.
6. 동료를 만나고(동료도 특공대 출신) 도움을 얻고.
7. 아내를 죽이라고 지시한 도지사와 그 수하들을 파멸시킨다.
위의 대강의 줄거리만 봐도 떠오르는 영화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액션영화와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1. 영화 초반부터 ‘내가 범인이야’ 하는 악당(도지사)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가 그렇듯 상대는 절대적 우위인 사람이어야 한다.
2. 가족 중 누군가가 의문의 또는 불의의 피해를 입어야 한다.
3. 복수하는 사람이 전직 특공대, 특전사, CIA, FBI쯤 돼야 한다.
4. 복수를 혼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벅찰 땐 동료를 찾아야 한다.
5. 그렇게 모인 팀은 대개 무적에 가깝다.
6. 처절한 응징으로 훌륭한 복수를 끝맺는다.
7.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평범한 사람이 된다.
사실 이 영화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전형적인 장르적 플롯과 규범을 교과서처럼 따르고 있다. 다음 장면까지 어렵지 않게 예상될 정도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장면이나 행동을 보며 안정감을 갖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할리우드가 수많은 시도와 경험 끝에 터득하게 된 일종의 법칙이다.
어느 장르던지 간에 장르적 플롯과 특성, 규범이 존재한다.
웨스턴은 총, 말, 카우보이 모자, 부츠 등 도상과 함께 복수를 하는 플롯을 갖고 있고
멜로드라마는 비련한 여자, 왕자 같은 남자, 방해하는 배경, 극복하는 이벤트 등으로 플롯을 채우고 있다. 공포 역시 처음엔 절대 믿지 않는 사람들, 그걸 또 꼭 확인하려는 주인공들, 설치다 먼저 죽는 엑스트라 커플들, 비밀이 밝혀지고 원한을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사라지는 소심한 영혼들이 반드시 등장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내러티브에 익숙해져 있고, 또 그 익숙함을 무의식 속에서 쫓고 있다.
영화를 보다가 익숙함을 벗어난 장면이 나오면 “어? 뭔가 이상한데?” 라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위의 본 영화 줄거리에서 죽은 아내를 납치된 딸로, 남편을 아버지로 바꾸면 우리가 열광한 테이큰이 된다. 테이큰은 성공하고 아이엠래스는 망한 것의 차이는 바로 몇 개 바뀐 저 설정 때문이다. 테이큰 역시 전형적인 장르적 플롯과 규범의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익숙한 클리셰에서 딸을 구하는 아버지라는 설정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토니스콧 감독의 맨 온 파이어 라는 작품이 있다. 결과적으로 흥행과 비평은 성공적이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고 전직CIA전문 암살요원이다. 암울한 과거로 은퇴 후 술로 의지하고 살다가 맡게 된 보디가드 업무. 한 소녀를 지키는 가벼운 일이다. 소녀를 통해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던 중 소녀가 살해당하고 덴젤은 깊은 빡침으로 복수의 방아쇠를 당긴다.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비슷한 이유는 전직요원이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내용이 있다. 가족이 아닌 소녀를 지킨다는 것과 소녀를 통해 본인의 삶이 스스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 약간의 바뀜이 큰 차이를 보인다.(믿거나 말거나지만 일부 관객들은 한국영화 ‘아저씨’가 이 영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주장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란 영화도 많은 캐릭터에 비해 정작 할리퀸 밖에 못 챙긴 다소 실망스러운 영화지만, 정의의 사도 대신 악당들이 세상을 지킨다는 해괴한 내용으로 영화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처럼 클리셰를 조금만 비틀어도 사람들은 신선해한다.
장르적 규범이 자로 잰 듯 정확한 통속극 드라마도 요즘은 다양한 시도들로 변화하고 있다.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고, 살았지만 영혼이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김치로 싸대기도 맞아보고.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보는 연속극 속 내용들이다.
영화는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안전하게 장르적 플롯과 규범을 따라갈 것인가,
신선하게 클리셰를 비틀어 패러다임을 확장할 것인가.
전자만 강조하면 익숙하긴 하나 자칫 뻔하고 지루한 결과를,
후자만 강조하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장르는 이미 한정적이고, 우리는 영화의 홍수를 겪으며 다양한 취향과 까다로운 안목을 갖게 됐다. 그것이 자극적이건, 충격적이건, 새롭건, 화려하건 기존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탈피해야 한다.
한때 토요일 밤의 열기나 그리스를 통해 청춘스타를 대표였던 존 트라볼타
그리고 젊은 시절 보여준 브로큰 애로우나 페이스오프의 액션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월을 탓하기에는 당신이 짊어진 과거의 영광이 너무 많다.
늦지 않았다.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처럼 인턴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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