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에 적극적인 반대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자폐증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으니까요.
자폐증이 안고 있는 고통과 문제보다도 자폐증을 통해 얻을 수도 있는 특수한 능력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싶네요.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영화가 태어난 걸까요?
자폐아의 삶
영화는 시작부터 엄청난 총격전이 벌어진 현장을 보여줍니다.
총격전과 벤 애플렉. 이 두 가지만으로도 훌륭한 액션영화가 기대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살벌한 총격전의 오프닝이 끝나고 영화는 자폐아와 그의 가족이야기로 급전환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액션영화를 표방하지만 실은 자폐아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 우리의 주인공 벤 애플렉(크리스찬 울프 역)이 심한 자폐 증상을 갖고 있는 자폐아이기 때문입니다.
벤 애플랙은 왜 두 가지 일을 하는가?
벤 애플렉은 회계사입니다. 그의 주 고객은 검은 돈을 만지는 어둠의 조직들입니다.
엄청난 산수 능력(자폐 증상)을 통해 보통 사람은 며칠 걸릴 회계업무를 하루 만에 해내죠.
그러나 그는 회계사이자 굉장한 능력의 킬러입니다.
청부살인을 하진 않지만 자신의 검은 고객들이 후환을 위해 본인들의 회계장부를 본 그를 제거하려 할 때마다 되레 죽음으로 응징하죠.
그는 그렇게 번 많은 돈을 자신의 사업체(킴스네일, 중식당, 세탁소)로 돈 세탁한 후 신경발달장애 클리닉에 거액을 기부합니다.
결국 그의 목적은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결론은 기부였던 겁니다.
정상이 무엇이냐고? 사회규범을 지킬 줄 아는 자.
이 영화는 자폐 이야기를 굉장히 위험한 방법으로 다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벤 애플렉의 아버지가 클리닉 선생님에게 자신의 아들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냐고 묻자 클리닉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정상이 무엇인지 정의하라고 반문합니다. 또한 영화 후반에는 클리닉 선생님이 자폐자들의 지능을 의사나 일반인인 우리가 잘못 검사해온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내용인즉 결국 정상과 비정상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 하냐는 뜻입니다. 그들을 남들의 기준에만 맞추면 그들은 영원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일지도 모르며 그들은 그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뜻입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영화 속 내용과 대입해보면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가 됩니다.
위의 이야기처럼 정상의 기준이 뭐냐고 반문한다면, 이는 결국 기준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할까요?
영화 속에서 자폐증 인물이 살인을 저지르고, 돈세탁을 하고, 검은 조직의 회계장부를 정리해주는 범법을 저질러도
영화는 자폐 증상을 가졌으니 우리의 기준으로 정상 유무를 판단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준이면 무수한 범법자도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어 우리 기준으로 법의 심판에 맡길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공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이 지켜야 할 규범 아닐까요?
누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최선의 방안을 찾고자 해야 합니다.
각각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특수성을 갖추었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의 규범에서 결코 예외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특성을 인정해준다는 명목이 변질되면 끔찍한 방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보통의 자폐 환자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수학에 강한 자폐 환자는 있을 수 있지만 살인을 능숙하게 하는 자폐환자 이야기를 나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과장된 캐릭터를 설정해놓고는 살인하고, 돈세탁 하고, 검은 조직의 회계장부를 정리해주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자폐증 환자가 정상일 수도 있으며, 우리의 잣대가 틀린 것일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의 메시지 전달방식에 심한 오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군다나 영화는 그것을 능력이라고 치켜세우는 해괴한 궤변까지 늘어놓으며 소재로 이용합니다.
정작 그들이 사회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고, 정확한 명중률, 천재적인 산수 능력, BX32라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특수컴퓨터로 펜타곤도 해킹할 수 있는 컴퓨터를 사용한다며 자랑 합니다.
차라리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내용이면 모르겠는데 이 영화 속 장애인은 스스로가 위험 그 자체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자폐니까 용납이 가능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자폐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있을지언정 의도를 가지고 계획할 일은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 애플렉은 감정 없이 냉정하게 일 처리할 뿐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폐증상이 있는 게 맞나요?
자폐도 등급이 있습니다. 크게 3등급으로 나뉩니다.
1급 : 지능지수가 70 이하, 누구의 도움이 있어야 행동자체가 가능한 사람.
2급 : 지능지수가 70 이하, 누구의 도움이 있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
3급은 지능지수가 71 이상, 일상생활에서 특별할 때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첫 클리닉 장면과 마지막 클리닉 장면에 나오는(결국 같은 사람임) 여자 자폐증 환자와 벤 애플렉은 서로 다른 자폐 등급입니다.
여자 환자의 증세는 일상생활도 다소 어려우며 집 밖을 나설 수도 없는 정도입니다.
그에 반면 벤 애플렉은 자폐증세가 거의 없어 보일 정도로 사회생활이 가능합니다.
딱히 긴장되면 동요 부르는 거 빼고는 말이죠. 더군다나 이상한 것은 한치의 오차도 용인할 수 없는 자폐를 가졌던 그가 한 여자 때문에 시도하는 위험한 행동들입니다.
사랑을 느꼈는지, 그저 잘해주어서인지 그마저도 영화에서 잘 표현되지 않아 아리송하지만 그런 사람 때문에 자신의 자폐적 행동을 벗어난다는 것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돈도 많은데다 예술 분야에 조예도 깊어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장하면서 감상할 줄도 알고. 게다가 여자에게 쉽게 그 비싼 잭슨 폴락의 작품을 쾌척하기까지...
도대체 이 인물의 어디가 자폐증상인거죠? 저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문화·예술·사회적 방면으로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능력자...ㅎㄷㄷ
벤 애플렉은 자폐가 아닌 그저 수학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닐까요?
아니면 살면서 자폐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던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굳이 어린시절 자폐증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교육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아버지의 교육은 어떤 결과를 낳았나?
아버지는 군인출신답게 혹독한 사회에서 견딜 수 있도록 강하다 못해 무슨 저런 아버지가 있나 싶도록 독하게 훈련시킵니다.
덕분에 아버지를 통해 킬러 스킬을 배우게 된 것이죠.
그렇게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켜서 자폐아를 일반인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벤 애플렉 아버지야말로 클리닉 원장감입니다.
클리닉 선생과 아버지의 교육 중 결과만 놓고보자면 아들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선생의 딸은 여전히 방에서 갇힌 채 특수컴퓨터나 만지며 살아가니까요.
그렇게 혹독하게라도 육성시켜서 벤 애플렉만큼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자폐 아이를 둔 많은 부모님들이 걱정도 안하겠어요.
또 한 명 이야기 안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벤 애플렉의 동생입니다.
이 영화가 잘 만들어놓고도 아쉽게 잘 살리지 못한 부분입니다.
동생은 평범한 보통 소년이었지만 자폐 형을 둔 이유로 아버지에게 형과 똑같은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결국 그는 성인이 되어 진짜 청부살인마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터무니없는 강제 교육을 통해 자폐 증상의 벤 애플렉은 누가 봐도 보통사람이 되었고(본인이 합법적인 일만 하고 산다면),
함께 배운 평범한 동생은 범죄자가 돼 버렸습니다.
획일된 교육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제대로 살리질 못하네요.
결국 이 영화는 자폐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폐에 대해 균형 있게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자폐가 가질 수 있는 특수성만 살리려고 한 거죠.
그렇다면 액션이라도 화끈해야 하는데 자폐라는 소재에 걸려 그것도 맘껏 통쾌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계사라는 뜻의 어카운턴트 라는 제목마저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실컷 사람 죽이고 죄 저지르고 자폐증에 대해 말해놓고는 제목은 회계사라니...
소재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영화이므로 자폐증상을 가진 사람이 회계원이 될 수도, 킬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줍잖게 자폐 증상을 이해하라는 듯한 뉘앙스를 영화 앞과 뒷부분에 넣으면서 쓸데없이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내용은 액션인데 앞뒤는 다큐 같달까요?
이해 못할 관객들이 아닌데 쓸데없는 정보를 주느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든 것 같은.
(아버지와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장면도 굳이 왜... 동생은 왜 떼놓고 갔는지도 모르겠고. 하나를 보여주면 그것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내용이 필요한데...)
또한 그런 자폐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이 마치 초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로 편향되게 묘사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초극소수이고, 대부분은 힘겨운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수가 기준이며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고, 가진 능력이 아무리 다수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그 능력의 사용 방법이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 속 옳고 그름의 기준 위에 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 X-MAN이나 어벤저스에서도 초능력자들과 일반인이 대립하는 문제와 비슷하네요)
이상이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 속 소재만을 이야기한 것이며,
실제 자폐 병에 관한 정보나 지식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벤 애플렉은 최근 배트맨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양새였는데 이런 작품으로 만나 무척 아쉽네요.
입술 굳게 다물고 묵직한 연기할 때마다 자꾸 배트맨 보는 것 같아서 보기 힘드네요.
당분간 벤 애플렉은 배트맨으로만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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