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스프레소/[공 연 리 뷰]

[공연리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극단 노뜰

썅이 2011. 6. 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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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과 상징만 남긴 방,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1936년에 이 작품을 남기고 사살되었다. 국가의 내전 속에서 힘들게 완성시킨 그의 작품은 85년이나 흘러버린 현재까지도 그 영향을 과시하고 있다. 2011년 오정아트홀의 상주극단 ‘노뜰’은 함축과 상징만 남긴 방,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관객에게 공개했다.


극장에 들어서자 ‘노뜰’의 개막 공연을 축하하는 오정아트홀의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포스터로 채워진 내부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위한 안내요원 등의 상기된 모습을 통해 공연의 기대감은 더욱 채워졌다.


객석으로 들어서자 뜻밖의 모습에 놀랐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 모두 무대 뒤쪽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인 공연으로 볼 때 막이 있어야 할 무대 뒤편에 단을 놓아 객석을 만들고 무대 앞쪽만을 연기 구역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 노뜰만이 가진 강점을 보았다. 극단 노뜰은 강원도 원주시의 한 폐교(前 후용 초등학교)를 활용하여 만든 창작센터에 입주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뜰은 일반적 프로시니엄 극장에 얽매이지 않는 무대 창조 스타일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리하여 반 원형무대가 되어 버린 무대 위에는 여러 개의 낡은 의자들이 조명 빛을 받으며 공연시작을 대기하고 있었다. 첫 번째 줄에 앉는 관객은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입석을 요구했는데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발이 젖게 된다는 안내였다. 본의 아니게 첫 줄에 앉게 되어 신발과 양말을 벗고 앉았다. 나처럼 첫 줄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까지 접어 올렸다.


공연이 시작되자 원작이 갖춘 음산함에 노뜰은 진한 공포와 긴장감까지 얹고 있었다. 시작부터 그들의 괴성과 억눌린 욕망의 표정들, 아버지의 죽음, 남편의 죽음의 슬픔과 갇혀버리게 되는 좌절감이 뒤엉켜 서로를 떠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묘사된 오프닝을 시작으로 노뜰의 강점이 절제된 대사, 통일성 있는 몸짓과 응집된 감정의 표정들로 원작의 살짝 늘어지는 흐름을 조여주면서도 함축과 상징만을 공간에 남기고 있었다. 조명을 이용한 창문, 실타래로 보여준 꿈, 상복 안에 감춰진 뜨거운 욕망, 권위의 상징 흔들의자, 소름 돋는 BGM들과 효과음 등 다양한 오브제들로 극은 통일감 있고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개를 이어 나아갔다.


딸들이 느끼는 원초적 감정의 욕망과 어머니가 배우고 답습해버린 사회의 관습과 형식의 체제 사이에서 순수한 희망과 꿈을 잃지 않은 어린 딸들은 세상의 불완전성을 통해 폐쇄 되어버린 폭군 어머니의 모습과 상충되어 비극은 더욱 더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절대로 서두르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극의 흐름은 바로 바닥의 물이 대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은 점점 바닥에 유입되기 시작하고 극의 진행과 함께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 사이 물은 더러운 소문이 되었다가 가벼운 먼지가 되었다가 소녀의 눈물이 되기도 하고 채찍에 튀는 피가 되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행동과 파멸의 물결은 극장 천장에 고스란히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이 초현실주의 집안 내부에서 모든 여자들의 숨겨진 욕망은 폭군 어머니 알바에 의해 철저히 숨겨진 듯 보이지만 이 극에서 절대 권력자는 단 한 명, 남자이다.


이 극의 유일한 절대 권력자, 남자.

공연 끝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남자 ‘로마노’는 여자들의 마음속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결국 폭군 알바의 집도 밤새 스며든 빗물처럼 새벽마다 찾아든 ‘로마노’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간다. 


결국 한 발의 총성으로 공연은 마무리 된다. 결론에서도 원작과 노뜰의 알바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원작에서는 알바의 총에 맞아 로마노가 죽은 줄로 착각한 아델라가 자살을 하고 알바는 집안의 명예를 위해 처녀로 자살했다는 걸 강조한다. 결국 알바는 또 다시 세상과 딸의 진실을 맞바꾸는 것이다. 노뜰에서는 창 밖에 총을 쏘면서 끝나는데 알바의 심리적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원작은 기회가 소멸로 이어지는 결말이라면 노뜰의 공연은 극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원작보다 더욱 더 절망적이고 허무적인 것이다.


텍스트의 견고함, 공연의 완성도, 배우의 열연.

세 박자는 한 치의 오차도 어긋남이 없이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첫 번째 줄에 앉는 선택권의 몫도 관객에게 주어져야 하겠고 개인적으로 물이 내 발로 점점 차올 때마다 알바 집안의 공포와 위기, 몰락의 기운이 함께 엄습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첫 번째 줄에 앉은 관객들만 느끼는 감정이라면 이 감정은 단체가 준 것이 아니라 일부 개인에게 한정된 감정이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반 원형무대일 바에야 조금 더 확장하여 배우들 등퇴장로만을 제외한 원형무대로 연구하여 모든 관객이 발을 담그고 앉아 곧 밀려올 공포와 긴장을 나처럼 느껴보면 좋을 듯싶다. 그리고 몇몇 배우들의 몸동작은 물에 찬 바닥을 비교적 안정되게 이동하고 다녔지만 일부 배우들은 바닥에 심하게 미끄러져 넘어졌고 그런 장면들을 몇 번 보자 배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인해 극의 몰입도가 깨져버리는 당연한 현상이 일어났다. 상당한 몰입도를 보여주는 극이기에 작은 실수 역시 크게 보인 것이다. 하지만 바닥이 물로 가득 찼기에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의 방편보다는 바닥을 물로 채운 무대의 참신한 아이디어처럼 참신한 기술력을 개발, 수반하여 완벽에 이르는 행동을 기대한다. 오랜만에 놀라운 무대 연출과 흥미로운 공연양식, 그리고 절제되고 통일성 있는 극과 그 속의 조화된 훌륭한 배우들을 보여 준 극단 노뜰.


벌써부터 다음 작품의 큰 기대로 가슴이 설레인다. 이런 즐거움을 선사해 준 극단 노뜰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갈채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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