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5 . 21
비가 오는 날이었다. 400석 규모의 복사골 아트홀 입구에는 부천 CSK 안내요원 여럿이 배치되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있었고 방명록을 남겨 달라는 친절한 멘트와 프로그램을 나눠주는 모습은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정시가 되었는데도 관객은 30명 남짓 차게 되었으며 대다수는 출연진의 친분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홍보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 무렵 대표자인 곽충신 연출가가 비로 인해 공연 시간을 좀 더 지연하겠다며 직접 나와 멘트를 했다. 최근에 한 마디 말도 없이 공연시간을 사정상 늦추는 공연단체들에 비해 이런 점은 솔직함으로 보였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15분 지연에도 불구 관객은 40명을 채 넘지 못하고 시작하였다. 400석 공연에 40명 관람. 이것을 관객들의 상실된 문화 행동이라고 봐야 할지, 홍보력 부족한 단체의 문제로 돌려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그렇게 텅 빈 객석을 놓고 공연은 시작됐다.
공연은 시작부터 삐그덕 댔다. 큰 문제는 바로 공연의 중심인 연기력이었다. 특히 공연의 중심인 여주인공의 연기는 연기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배우를 비롯, 그 후 나오는 조, 단역들 모두의 연기 실력이 동아리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암전 때 세트 이동시 많은 인원들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작업등을 켜서 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세트를 끌고 등퇴장하여 큰 소음이 암전 때마다 났고 등을 돌려 연기한다거나, 말이 안 맞는 대사들, 형편 없는 실력의 악기 연주를 오랜 시간 보여준다던가, 등퇴장길이 다르며(왼쪽 문으로 등장하여 오른쪽 소대로 들어가 버린다) 독백형식의 대사들, 이전의 세트들이 다음 장면에서 미처 빼지 못해 그대로 있고 119 대원은 의사로 나오며 심지어 119를 부를 때 위치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찾아오는 이상한 일 등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른을 존중하자면서 학생들은 모두 의자에 앉고 수업을 들으러 온 할머니는 혼자 세워두는 장면이며 위독한 사람이라면서 의사가 어깨 부축을 하며 데리고 들어오는 장면 등은 더 이상 실소를 떠나 공연 완성도에 대한 화가 나기 시작했으며 관객으로서 모독 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게다가 후반부에는 마치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은 묘사며(정확히 하나님이라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음), 기독교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비종교인들에게 부담스러움을 준 게 사실이다. 이는 사전 공지나 팜플렛 등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항이며 그 묵인은 대중성을 배제해버린 행위이다. 더욱이 이 공연은 R석 40,000원이라고 버젓이 팜플렛과 포스터에 써 놓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 공연이 초연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냉정히 말해서 연출의 의도와 부천 CSK의 실력에 의심이 가며 과연 사업의 순수한 의도와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에 대해 큰 허무함을 느꼈다. 나의 생각과 비교하기 위해 다른 관객들을 둘러보니 대개는 자고 있었고 아이들은 2시간의 러닝타임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교단체집단이며, 청소년 센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동아리 성향이 강한 단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성극이라는 것도, 동아리 수준 단체라는 것도 모르고 단순히 뮤지컬로만 생각하고 4만원을 내고 찾아온 관객으로서는 충분히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무료도 아니고 새로움도, 유익함도 없는 자기 단체의 자축 파티에 무려 4만원의 거금을 내고 2시간동안 듣기 싫은 자기 자랑을 꼼짝없이 들은 것 같았다. 과연 이들은 이 공연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까? 그 성공의 기쁨은 관객이 아니라 본인들 아닐까.
때때로 연출가들이 망각하는 사실이 있다.
자신이 본 세상과 관객들이 보고 싶은 세상은 아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확실한 예가 바로 이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성취감에 휩싸인 연출 및 출연진들에 비해
나, 그리고 함께 간 친구의 허망한 표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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