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시작된 ‘연극열전’은 과히 국내 최고의 연극기획단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연극열전은 그 해에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고 다음 해에 앵콜공연을 하는 방식으로 공연 기획 및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처음 연극열전은 논쟁의 중심에 섰었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유명 스타 배우들을 무대로 끌어와 흥행돌풍을 이어간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일시적 흥행 위주 상술이냐 연극계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행위냐로 이슈화되며 연극계를 흔들었다. 결론부터 따지면 연극열전은 대성공을 거뒀고 일반 연극은 아직도 관객이 없어 허덕이고 있다. 결국 유명배우가 나오는 공연은 성공하고 무명배우가 나오는 공연은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28일 목요일 현재 연극열전 3 앵콜공연을 진행 중인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를 관람하고 왔다. 공교롭게도 연극열전의 수장인 조재현 씨(배우, 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무대는 작은 의자 하나와 동산을 배경으로 한 바닥의 수풀들, 크게 우거진 나뭇가지 하나를 천장에 설치해서 내려뜨렸다. 여배우 홀로 앉아 객석을 향해(객석은 민들레들로 표현) 의자에 앉아 있고 이어 조재현 씨가 나왔다. 이후부터 일찍 사별한 부부의 이야기가 장마다 시간의 흐름으로 표현되며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울었다. 극 전체가 슬퍼서가 아니라 극 속의 어느 한 부분이 나의 상상력에 흡수되며 어머니 생각에, 아내 생각에, 삶에 대해 슬퍼서 울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극 전체가 슬퍼서는 아니었다. 조재현 씨의 연기는 예상대로 수준급이었다. 명실 공히 우리나라 대표 배우로서 손색이 없었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말투, 할아버지 연기할 때의 그 표정과 움직임, 그리고 그 무표정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 하지만...
공연은 전체적으로 실망감을 주었다. 주된 문제는 플롯이 너무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의 딸이 아닐지도 몰라....” 딸의 탄생에 대한 비밀이 풀리려 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아내의 하룻밤 외도에 임신이 되었다? 그것도 관객의 추측일 뿐이다. 아내의 대사 속 ‘아닐지도 몰라’ 가 더욱 더 추측으로만 남게 하였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내와 소통을 나누면서 도 극은 관객에게 아내가 죽은 이유도 남기지 않는다. 외도했던 부인이 죽었다면 이유도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자살일지, 병일지, 아니면 치정에 얽힌 살인일지 등등 또한 남편은 부인의 외도를 알고 있었는지, 녹음기는 왜 설치했다가 듣지도 않고 비에 젖어 고장내버렸는지, 곧 돌아온다던 남편은 왜 안 왔는지, 노인이 되어 받은 마지막 통화는 의사로 추정될 뿐 정확히 누구와 무슨 대화였는지.. 일일이 나열이 힘들다. 모든 궁금증을 관객에게 숙제로 남겨 버리고 제시만 한 채 결론을 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관객에게 열린 결론을 주려했다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가 아니길 바란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도 너무나 꽃과 관련된 '끼워맞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둘이 만날 때 암호로 쓰자던 노래, 민들레 홀씨되어. 핸드폰 속에서 아내가 부르는 노래, 꽃밭에서. 두 곡은 통일성이 없다. 그저 꽃노래라는 것 뿐. 차라리 한 곡만 더 강조하는 것이 더 인상 깊었을 것 같다. 또한 노래방에서 들을 법한 반주의 BGM들 역시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아쉽게도 작품 속에 녹아내지 못한 ‘민들레’와 훌륭한 캐릭터들임에도 불구 서브 플롯 밖에 될 수 없었던 노부부의 플롯 역시 아쉬웠다. 노부부가 마지막에 읊조리는 ‘아마도 그럴테지’, ‘그렇겠지’, ‘그럴거야..’ 하는 대사는 정말로 불필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라는 질문에 오직 작가만 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관객에게 열린 대사를 준 것이라고 말할 것인가? 마지막 두 사람이 처남의 계획으로 만나게 되는 첫 순간도 사족일 뿐이다. 이미 두 사람이 과거에 행복했을 거라는 건 극을 보면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차라리 모든 궁금증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풀어주는 어느 순간이길 기대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내와 싸우고 아내가 나가버려 앨리를 갖게 된 오해의 그 날 밤, 그 순간이 더 강렬하며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시간 35분의 짧은 러닝타임은 주관적으로 나를 울렸고 객관적으로 실망시켰다. 나와 함께 관람한 8명 모두 나와 같은 답답함을 느꼈음에도 결론은 슬펐다, 조재현 씨 연기 잘하더라, 로 평가 내렸다. 나 역시 슬펐고 조재현 씨의 연기력에 새삼 감탄했다. 하지만 앵콜까지 하는 작품이 이 정도의 피드백도 없이 부족한 부분을 고치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다. 행여 작가는 텍스트를 주고 떠났다 해도 작품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연출과 훌륭한 배우들은 왜 이런 부분을 그냥 넘겼는지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아니면 작품 속에 나타나지 않은 작가의 머릿 속 상상을 연출과 배우는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많은 문제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래도 좋았다, 라고 말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연기자들의 열연도 아니고, 극이 주는 감정도 아닌 나 역시 지금 사랑을 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같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나 역시 주인공의 대사처럼 평생 잔디 위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귀를 파주고 발톱을 깎아주길 너무나도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
관람일 : 4월 28일(조재현 캐스트), 4월 30일(이광기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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