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은 낯선 작가였다.
그도 그럴것이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이라는 뉴스를 접하기 전까진 맨부커 상이라는 존재도, 한강이라는 작가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소설은 읽지 않았고, 또한 읽기 싫었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여유라고는 1분 1초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과 도통 글로서는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소설 속 배경, 그로인해 한 권을 읽는데 엄청나게 소요되는 시간적 허비가 아까웠다. 그러므로 책이나 드라마보다는 길어야 2시간 안에 결과를 확인하는 영화를 선호했다.
소설을 읽기 싫은 이유는 하나다.
나 역시 극작 전공을 했던 터라 작가들에 대한 질투심과 내 자존심에 대한 자기방어였다. 무능한 나는 아무리 써도 캐릭터의 상황은 그려도 삶은 그려내지 못했고, 캐릭터의 행동은 묘사해도 캐릭터의 뿌리깊은 정신세계와 그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글이 술술 익히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만나면 한며칠은 없는 실력으로라도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소설 쓰는 법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내 목적과 직관적으로 부합하는 제목의 책을 보고 구입해서 읽은 책이 있는데 바로 한강 소설가의 아버지가 쓴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이다. 입문하는 분들은 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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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오빠도 모두 소설가라 작가 한강은 소설가 집안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 한강 역시 아버지의 글쓰기 교실을 읽고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이 책 외 여러 책을 통해 소설가로 거듭나고자 했던 수줍은 과거사도 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끈기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기나긴 병마와 싸우는 듯한 끈기 없이는 절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행위이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어? 이거 영화 채식주의자랑 너무 닮은데? 라고 생각했다.
후에 찾아본 것이지만 이 책은 3편의 중편 묶음으로 하나의 연작소설이다.
1부 채식주의자는 창작과 비평사의 2004년 여름호에 실렸고,
2부 몽고반점은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에 실렸다.
3부 나무불꽃은 문학 판 에 2005년 겨울
총 2년여에 걸쳐 쓴 작품들이다.
2009년 영화 채식주의자를 먼저 봤다.
영화 속 영혜 역을 맡은 채민서의 노출씬만 회자되었고 그것만 찾아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더 분명하게는 남자들이) 원작소설 따위는 있는지도, 알 필요도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다시 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책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이미지들과 관념들은 어마어마하다.
1부. 채식주의자
평범한 삶을 살아온 영혜는 꿈을 꾼 이후 돌연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채식주의 선언은 그녀의 남편과 가족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던 날,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고기를 강제로 먹이려다 폭력을 휘두르고, 영혜는 과도로 손목을 긋는다. 그로인해 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그의 남편은 모르는 사람으로, 몰랐던 사람으로 부정한다.
2부. 몽고반점
계속된 슬럼프에 괴로워하던 예술가 민호는 아내 지혜로부터 처제 영혜가 스무 살까지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렬한 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혀 그녀를 모델로 행위예술을 시킨다. 그는 예술적 야망과 육체적 욕망의 분계점에서 처제와 관계를 맺고 이를 아내에게 들킨다. 이 일로 민호는 아내와 자식에게 멀어지고 동생 영혜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3부. 나무불꽃
지혜는 동생이 입원중인 정신병원으로 찾아간다. 거기서 말라버린 나무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는 동생을 만난다. 병원 측은 더이상 무리라며 동생을 퇴원시키고 영혜는 지난 과거들을 돌아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떠올리려 애쓴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동생 영혜를 엠블런스에 태우고 병원으로 떠나간다.
책의 내용은 줄거리만큼 쉽지 않다.
모든 것이 그저 평범해서 영혜를 좋아했다던 남편의 무관심.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은 기르던 개에 대한 죄책감, 그 개를 동네 사람들과 잡아 먹은 아버지의 동물적 잔인함, 자신이 살기 위해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폭력을 묵인해 온 비열함. 이미 그녀는 많은 것으로부터 갑갑함을 느껴왔다.
그들에게 개처럼 순종하고 있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기만은 브레지어를 차지 않는, 갑갑함을 벗어버리는 일탈로 나타난다.
인간의 잔혹함을 깨달은 영혜는 스스로 인간으로서 탈피를 선택한다.
그녀는 평범함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자유로움, 순수함을 위해 갖고, 뺏고, 지키고 얻어내야 하는 능동적 형태에서 벗어나 햇빛이라는 외부 에너지 하나만을 바라고 사는 지독한 수동적 형태의 채식주의자로 변한다.
상하고 부패하고 썩어버리는 동물적 상태를 벗어나 차라리 시들고 말라버리는 식물적 상태를 선택한다. 고행이자 어린아이로 회귀하는 과정은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더러움을 게워낸다.
매일 밤 꿈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가족제도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해야 하는 모든 동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영혜는 동박새를 물어 죽이고 인내의 상징인 나무가 되어간다.
크고 많은 나무가 있는 정신병원 주변, 정신병원은 인고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하나로 이어진 나무들의 소리를 듣고 숲으로 사라진다.
이 소설에서는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여자들은 주로 인내한다.
영혜는 삶의 환멸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신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언니 지혜는 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병, 지독한 삶을 끝까지 인내하고 신음한다.
그녀들은 동물적 성향을 피로 빼고자 한다.
영혜의 그어진 손목에서 피가 분출하는 것이며, 호스를 통해 역류하는 피 장면이 그렇다. 언니 역시 하혈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병을 치료하는데 적극적이다. 보라색 배냇내가 나는 티셔츠를 입고 순수의 시절을 떠올리며 버텨보는 것이다.
영혜의 남편은 완벽한 상태에서 놓친 것을 아쉬워했고(아내, 당초 마음에 들어했던 아내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처형같은) 지혜의 남편은 잃은 것을 얻으려 했다.(열정, 자신의 페르소나, 처제같은)
처제의 몽고반점, 그 하나의 출구를 목표로 자신 스스로도 생소한 본인의 열정을 쏟았고, 그 결과는 예상하듯 처절했다.
만일 ~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했더라면, 우리는 소설 속 후회를 끊임없이 머릿속에 되내이지만 후회의 순간에도 작가의 말대로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강렬한 이미지들과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꿈과 행동들, 네 사람의 뒤틀린 감정을 쉽게 따라가기 힘드나 세 편의 중편들은 마치 가지처럼 엮여있는 듯 꼼꼼한 매듭처럼 독자의 흥미를 놓지 않는다. 가장 재밌게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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