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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송영감은 자신과 7살 자식 당손이를 버리고 송영감에게는 아들과 같던 여드름쟁이 조수 놈과 도망간 부인에게 분노한다. 병환은 차도가 없고 점차 독 짓기도 힘들지만 있는 힘을 다해 독 짓기에 열중한다. 그나마 그마저도 한 가마를 굽기 어렵고 방물장수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당손이를 다른 집에 보내자며 송영감을 설득한다. 가마 안에서 자신의 독만 터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그토록 자랑하는 독짓기 실력도 이제 끝나버렸음을 깨닫고 앵두나무집 할머니를 통해 당손이를 다른 집 양자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는 망가져버린 독처럼 죽어가는 송영감 스스로 가마 깊숙한 곳으로 기어 들어간다.
비록 단편소설의 줄거리라고는 하나 이 짧은 줄거리를 바탕으로 표현된 삶을 향한 힘과 고뇌는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또한 전문은 대사문 없이 지문으로만 되어 있어 철저한 제3자의 관찰자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여 객관적 안타까움을 더 극대화하고 있다.
조금의 균열로도 깨져버리는 독처럼 자신의 삶에 찾아온 균열에 의해 송영감은 여지없이 허물어지지만 그 허물어짐 역시 삶이라는 굴레의 한 과정임을 깨닫는 생명의 고통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다 읽고 난 후 깊은 여운을 남기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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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이년! 이백 번 쥑에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 두구 그래 도망을 가? ―송 영감은 잠꼬대를 하다가, 아들 당손이가 아바지, 아바지이! 하고 울먹이며 깨우는 바람에 잠꼬대에서 깨어났다. 송 영감이 앓고 있는 동안에 아내는 아들놈 같은 나이의 조수놈하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그는 아내의 일이 가슴에 못이 되어 일곱 살 먹은 아들을 끌어안으며, 아내에 대한 원망으로 밤을 새었다.
송 영감 자신이 앓고 있는 사이에 조수는 중옹 통옹 반옹 머쎄기 같은 독들을 빚어 놓았다. 송 영감은 그 크고 작은 독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일부터라도 당장 독을 지어야 부자가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감정을 삭이고 있었다. 날이 새자 송 영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일어났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독을 한 가마 구워 내려고 했다. 그러나 퍼뜩 눈앞에 아내와 조수의 모습이 어른거려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조마구와 부채마치를 들고 독 짓는 일을 했다.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전을 잡는 손이 떨려 독이 얇게 그리고 못나게 지어진데다가 마무리마저 영 잘 잡혀지지 않았다. 그 원인은 아내에 대한 환영뿐 아니라 열 때문이기도 하였다. 송 영감은 자기가 짓던 독 옆에 쓰러지듯이 누워 버리고 말았다. 송 영감은 저녁때가 기울일 무렵에야 정신을 차렸다. 아들은 황혼의 그늘 속에서 여느 때처럼 장보러 간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송 영감은 벌떡 일어나 겨우 독 한 개를 짓고는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송 영감은 한밤에 아들이 울며 흔들기에 깨어났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밥그릇을 가져다 놓으며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주더라고 했다. 송 영감은 그 밥그릇을 제껴놓았다가 다시 끌어다가 먹었다. 그러나 밥이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송 영감은 더 자주 쓰러지곤 했다. 주위에서는 자기 몸을 돌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그는 여전히 독 짓는 일을 하려고 애썼다. 어린 아들 당손이와 같이 겨울을 날 생각이 그를 한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송 영감이 쓰러져 있는데 방물 장수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와서, 만일의 경우 혼자 남게 될 당손이를 염려했다. 할머니는 당손이를 다른 집에 양자로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송 영감은 그 말에 버럭 역정을 냈다. 자식에 대한 애끓는 정분과 자식을 걸식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이 그의 병든 몸을 죄어 오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송 영감은 독을 짓는 일을 하는 시간보다 자리에 쓰러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가마에는 독이 백 개 차야만 굽게 되는데, 아직도 가마를 채우기에는 스무 개가 모자랐다. 송 영감의 마음은 급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급한 것은 마음뿐으로서 일어나다가 도로 쓰러지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할머니는 마침 좋은 자리가 났으니 당손이를 양자로 주는 것이 어떠냐고 전과 같은 말을 꺼냈다. 송 영감은 오늘도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동냥을 해서라도 아이를 굶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앵두나무집 할머니에게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사실 아들을 굶지 않게 하는 일은 막막했다. 우선 아내가 도망친 이유가 생활고 때문이었다. 어쨌든 한 가마를 채워 독을 굽는 길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은 다시 조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 영감은 가까스로 만든 독 몇 개를 합해서도 끝내 한 가마가 차지지 않았으나, 그 독들을 가마에 넣었다. 도망간 조수가 만들어 두었던 독들과 그것들과 함께 넣었다. 독 말리기에 아주 그만인 날씨였다. 독은 말린다기보다 바람쐬기라 할 수 있다.
독들을 마당에 내이자 독가마 속에 있던 거지들이 나왔다. 그들은 겨울동안 따뜻한 가마에서 보내는 것인데, 독 굽는 때가 아닌데 독을 짓는다고 투덜거렸다. 송 영감은 그들에게 말대꾸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송 영감은 늦저녁 때쯤 해서 불질을 시작했다. 불질을 잘해야 좋은 독을 구울 수 있다. 불질을 해서 서너 시간 지나면 하얗던 독들이 흑색이 되고, 또 서너 시간 뒤에는 다시 하얗게 된다. 그리고 적색으로 됐다가 이번에는 샛말갛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곁불놓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소나무를 단으로 넣기 시작했다. 불길은 거세게 확확 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이날 해도 다 저물었다. 동냥을 나갔던 거지들이 날이 저물자 독가마 부근에 다시 모여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독이 완성된다고 송 영감이 가슴을 죄고 있을 때, 갑자기 '뚜왕! 뚜왕!'하고 독이 튀는 소리가 났다. 억지로 만들어 온 독들이 무너진 것이었다. 송 영감은 어둠 속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송 영감은 뜸막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기 옆에 울며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했지만, 속으로는 지금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이튿날 송 영감은 앵두나무집 할머니를 자기에게 오게 하여, 당손이를 전에 말한 집에 양자로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철없는 당손이를 말썽 없이 보내기 위해서 송 영감은 죽은 시늉을 하기로 했다. 그냥 감고 있는 송 영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이 떠나간 뒤 송 영감은 거의 다 죽은 몸을 이끌고 독을 굽던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속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무너져 버린 독들을 대신하려는 것 같았다.
황순원
1915년 3월 26일 평남 대동 출생. 숭실중학교, 와세다 제2고등학원을 거쳐 1939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에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한 후 시 창작을 계속하여 『방가(放歌)』(1934), 『골동품』(1936)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937년부터 소설 창작을 시작하여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후에 『늪』으로 개제)을 출간하고, 그 후 소설 창작에 주력하여 『목넘이 마을의 개』(1948), 『기러기』(1951), 『곡예사』(1952), 『학』(1956), 『잃어버린 사람들』(1958), 『너와 나만의 시간』(1964), 『탈』(1976) 등의 단편집과 「별과 같이 살다」(1950), 「카인의 후예」(1954), 「인간접목」(1957),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일월」(1964), 「움직이는 성」(1973), 「신들의 주사위」(1982)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0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황순원전집』이 간행되었다.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춘 황순원의 작품들은, 많은 논자들에 의하여, 한국 현대 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되기 쉬운 법이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충실히 견지되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문예 사조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문학 세계에서 주조음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황순원은 한번 작품이 발표된 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손질을 거듭하는 장인적 집요함의 소유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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